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연쇄 아동 성폭행과 살인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두 번이나 사형을 선고받은 정석범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형 집행을 눈앞에 두고, 대법원에서 극적으로 무죄 취지 판결을 받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서, 우리 법조계에 ‘과학 수사’와 ‘자백의 보강법칙’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남긴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1. 사건의 시작: 공포에 휩싸인 구리시와 그날의 검거

1991년 11월과 1992년 6월, 경기도 구리시에서는 참혹한 범죄가 잇따라 벌어졌습니다.
1993년 4월 26일 밤 11시 20분쯤, 강서구 외발산동에 있는 00여고 뒤편 산 중턱에서 지 양이 심하게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지 양의 부모님은 저녁 6시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보니 지 양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동네 주민들과 함께 마을 근처를 찾아다니게 됐다고 해요.
그러다 뒷산 어딘가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걸 보고 올라가 보니, 지 양이 장작더미 위에서 심하게 불에 탄 채 숨져 있던 것을 발견한 거죠.

5월 2일, 신대방동에 있는 00국민학교에서 유치원생의 혀가 잘리는 끔찍하고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범인들은 국민학교 별관 보일러실로 각각 6세(방양)와 7세 유치원생(정양)을 끌고 가서, 혀를 내밀라고 윽박지른 뒤 칼로 잔인하게 혀를 잘랐다고 합니다.
끔찍하게 혀를 다친 두 아이는 운동장에 있던 한 여성 덕분에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정양은 혀 1cm가 잘려 나가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방양은 2cm 넘게 혀가 절단돼 봉합수술조차 힘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정양은 잘려나간 혀를 찾지 못해 언어장애를 갖게 되었고, 평생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집중한 끝에,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두 유치원생의 혀를 자른 범인을 붙잡았습니다.
놀랍게도 범인은 겨우 12살밖에 되지 않은 이모 군이었습니다.
국민학생이 유치원생들의 혀를 잘랐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군은 경찰에서 "범행 전날 오후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자신을 '산이슬파 두목'이라고 하는 20대 남성에게 끌려 학교 뒷산 약수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들과 함께 지내다가 강요를 이기지 못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그 지역에 살며 비슷한 전과가 있던 정석범을 주요 용의자로 지목합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모두 자백했습니다. 그는 어린 지모양을 성추행 하려다 아이가 반항하는등 여의치 않자 그대로 아이의 손발을 묶은채 장작더미에 던져 산채로 태워죽였다고해요. 그는 유치원생 혀를 자른 사건의 혐의도 추가되었습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사형을 구형합니다.
2. 1심·2심의 판단: “인면수심의 범죄, 사형뿐”

1심과 2심 재판부는 단호했습니다.
- 정석범의 자백이 매우 구체적이었다는 점,
- 피해 아동들의 신체가 극도로 잔혹하게 훼손된 점 등을 들었습니다.
정석범은 법정에서 “고문 때문에 허위로 자백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경찰 조사 기록을 더 신뢰하며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들과 유족들, 시민들은 당연히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3. 대법원의 반전: 법적 쟁점과 과학의 힘

1994년 1월, 대법원(주심 김형선 대법관)은 1·2심의 사형 판결을 뒤집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한민국 사법사에 남는 판결로 꼽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전문적인 법리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① DNA 감정의 결정적 불일치
범행 현장에서 나온 범인의 음모와 모발에 대한 DNA 분석 결과, 정석범의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과학적 증거가 피고인의 자백보다 앞선다”는 기준을 분명히 제시했습니다.
② 목격자 진술과의 충돌
생존한 피해아이는 범인의 팔에 문신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정석범의 몸에는 문신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 범행 도구로 지목된 면도칼에서도 피해자의 혈흔이나 정석범의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③ 자백 보강의 원칙
헌법 제12조 7항은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등 부당한 방법이 아니었음이 확실할 때만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객관적 증거가 자백과 다르다면, 그 자백은 신뢰할 수 없고 유일한 유죄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인 이군(13)은 2일 새벽에 공구를 훔치고 두명의 여자 아이들의 혀를 자른 것으로 진술했지만 실제 공구를 훔친 날짜는 4월 30일이라 이군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4. 사건의 결말과 사법적 의미

결국 정석범은 유치원생 혀절단 사건은 무죄판결을 받았고, 지양 성폭행 살해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정석범은 죄를 뉘우쳤을까요?
어린 아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정석범은 감옥 안에서 사형제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사형제도는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살인행위로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사형이 집행된 뒤 오판이었음이 밝혀질 경우 영원히 권리구제가 불가능 한 만큼 제도 자체가 폐지되어야 한다.
(항상 말하는 거지만 지들은 피해자의 인권은 생각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지들 인권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길까요?)
과연 그는 억울하게 사형수가 될뻔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치밀한 알리바이로 완벽범죄를 성공한 살인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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