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건사고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 일본 도라에몽 살인사건 - 후쿠다 다카유키(福田 孝行)

피아 2026.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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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피해자 모토무라 야요이(本村弥生), 유카(夕夏) 모녀
피해자 모토무라 야요이(本村弥生), 유카(夕夏) 모녀

 

1999년 4월 14일. 일본 야마구치현 히카리시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23살이었던 주부 모토무라 야요이 씨는 11개월 된 딸 유우키 양과 함께 조용하고 단란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한 소년의 범행으로 이들의 소중한 일상은 영원히 멈추고 말았습니다.

 

 

집에 침입한 소년은 당시 18세였던 후쿠다 다카유키.

그는 배수구 검사를 하러 왔다고 속이고 집에 있던 아요이를 강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야요이가 맹렬하게 저항하자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간(시체를 간음하는 것. 이미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려는 행뒤)을 하는데

옆에서 11개월 된 유우키가 울음을 터트리자 시끄럽다며 마루에 내던졌습니다. 아이는 고통 속에서도 엄마에게 가겠다며 기어갔지만 후쿠다는 그런 아기를 몇 번이고 내던지고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습니다.

 

그는 시신을 벽장에 숨기고 지갑을 훔쳐 달아났는데 범죄를 저지른 후 태연하게 오락실에 가기도 했어요. 4일 후인 1999년 4월 18일 체포가 됩니다.

 

후쿠다 타카유키

범인 후쿠다 다카유키 (福田 孝行 / ふくだ たかゆき)
범인  후쿠다 다카유키 (福田 孝行 / ふくだ たかゆき)

 

후쿠다는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와 함께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정신질환을 얻게 되었고 후쿠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자살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필리핀 여성과 재혼을 했죠. 

 

후쿠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지만 2주 만에 출근을 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아무 여자나 강간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고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재판과정

 

사건 이후 재판 과정에서 후쿠다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뻔뻔하게 망언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들이 우연히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 나와는 관련이 없다."

"다른 주변의 어른들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나도 지금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이 힘들다."

"피해자 남편도 빨리 사건을 잊고 새 가정을 만들어라"

 

범인 후쿠다 다카유키 (福田 孝行 / ふくだ たかゆき)
범인  후쿠다 다카유키 (福田 孝行 / ふくだ たかゆき)

 

1999년 6월 야마구치현 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검찰은 범인이 미성년자이지만 죄질이 너무 무거워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1심 법정은 흉악한 범죄이지만 우발적이었고, 반성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법원은 후쿠다가 당시 '소년법'의 보호를 받는 18세 미성년자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소년범은 교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였죠.

 

[모토무라 히로시]
[모토무라 히로시]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빼앗긴 남편은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법에 절망했다. 빨리 피고를 사회로 내보내라. 내가 직접 죽이겠다."

(司法に絶望した。早く被告を社会に出してほしい。私がこの手で殺す。)

 

검찰은 항소를 했지만 2심 재판에서도 검찰의 항소가 기각되었습니다. 

이에 재판은 최고재판소까지 가게 되었는데 검찰은 후쿠다가 1심 이후 유족에게 보낸 조롱 섞인 편지를 증거로 제출하며 후쿠다에게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終始笑うはなのが

ヤクザはツラで馬鹿ジャンキー精神病

環境のせいにしてげるのだよアケチ君"

나쁜 건 지금의 세상이다. 야쿠자는 해외로 도망치고 중독자는 정신병으로 도망치는데,

난 환경 탓을 해서 도망치겠다.

 

"犬があるかわいい出会った。… そのままやっちゃった」…

これはでしょうか"

개가 어느 날 귀여운 개를 만났다..... ... 그대로 '해버렸다' ...

이게 죄인가

 

 

후쿠다 타카유키는 2006년 재판 중 법정이

벽장에 시체를 유기한 이유에 대해서 묻자 "시체를 벽장에 넣어두면 도라에몽이 어떻게든 도와줄 것이라 믿어 그랬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또한 사후에 간음을 한 것"소설 마계전생에 부활의 의식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죠.

 

게다가 후쿠다의 변호사들이 최고재판소 변론에 불참해 판사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결국 최고재판소는 '파기 환송'을 명령하고 히로시마 고등법원에 사건을 되돌려 보냈습니다.

 

2007524일 파기 환송심이 열렸습니다. 변호인 측은 '살의가 없었기 때문에 과실치사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 반면, 검찰 측은 '명백하게 살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형이 당연하다'라고 맞섰죠.

 

 

결국 2008422,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변호인단은 여기에 불복해 상고하여 상고심을 진행했으나, 2012220일 최고 재판소가 상고를 기각하며 후쿠다 타카유키에 대해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후쿠다는 현재 사형수로 히로시마 구치소에서 사형을 대기하면서 복역 중이랍니다..

 

왜 '도라에몽 살인사건'이라고 불릴까?

 

이 사건의 공식적인 명칭은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 살인사건'입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도라에몽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여기에는 범인 후쿠다가 수감 중에 지인에게 보낸 비정상적인 내용의 편지 때문입니다.

 

사건 이후 구치소에 수감된 후쿠다는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망상에 빠졌습니다.

"도라에몽이 주머니에서 사람을 되살리는 도구를 꺼내 내 죄를 씻어줄 것이다.",

"강간은 애정표현",

"세상은 결국 악인이 이긴다~ 내가 7, 8년 후에 출소하면 성대한 파티를 열어줘야 한다 ~"라는 식의 황당한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영아를 포함한 모녀를 살해한 파렴치한 범죄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와중에도 반성을커녕 만화 캐릭터를 언급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모습에 일본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편 모토무라 히로시

피해자 남편 모토무라 히로시
피해자 남편 모토무라 히로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남편 모토무라 히로시 씨의 삶은 그날 이후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에 잠겨 있기보다, 범인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 사회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범인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을 때, 그는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범인이 옥중에서 보낸 편지 속 망언들을 세상에 알렸고, 일본 전역을 돌며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범죄자에게 베푸는 관용은 피해자에게는 잔혹한 형벌"이라는 그의 목소리는 일본 사법 체계를 뒤흔들었습니다.

 

- 피해자 참여 재판제도: 그의 투쟁은 일본의 사법 시스템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변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 범죄 피해자의 인권: 이전까지 범죄자 인권에 치우쳐 있던 일본 사법부의 시선을 '피해자 중심'으로 돌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피해자가 포기하지 않으면 법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냈습니다.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피해자의 남편인 모토무라 히로시씨가 낸 책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피해자의 남편인 모토무라 히로시씨가 낸 책

 

'천국에서의 러브레터'라는 책은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모녀살인사건 피해자의 남편인 모토무라 히로시 씨가 낸 책으로 생전에 아내인 모토무라 야요이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출판한 책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모토무라 히로시, 모토무라 야요이 공저로 되어있습니다.

 

주로 편지를 쓰는 사람은 모토무라 야요이이며 남편이 그 사이에 해설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내용은 1994년 겨울부터 사건이 일어난 1999414일 당일까지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 아이의 출산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적인 편지를 출판하면서 미성년 시절의 음주나 성생활에 대한 노골적 묘사, 친구나 지인에 대한 노골적 험담들을 편집하지 않은 것은 비판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왠지 이후에도 편집은 가해지지 않았다고 해요..

 

그는 범인을 향한 사법 투쟁을 이어가면서도 자신의 삶을 조금씩 추스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2009년 직장 동료와 재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1남 1녀를 두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범죄자의 잔혹함을 넘어, '피해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토무라 히로시 씨는 "단순히 형량을 높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범죄자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진심으로 깨닫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끔찍한 괴담이나 루머를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범죄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 유족이 어떻게 세상과 맞서 정의를 세웠는지 그 기록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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