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건사고

지문과 DNA를 남기고도 25년째 잡히지 않은 이유 -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世田谷一家殺害事件)

피아 2026. 3. 13.
반응형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려던 2000년의 마지막 밤, 일본 열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世田谷一家殺害事件)'입니다.

범인이 현장에 자신의 소지품과 DNA, 지문, 심지어 대변까지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잡히지 않은 이 기묘한 사건의 디테일을 정리해 드립니다.

 

◆ 사건 개요: 행복했던 가정을 덮친 비극

2000년 12월 30일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살해당한 가족. 뒤편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부인 야스코(41), 남편 미야자와(44), 아들 레이(6) 딸 니나(8). 일본 경시청 홈페이지 캡처
2000년 12월 30일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살해당한 가족. 뒤편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부인 야스코(41), 남편 미야자와(44), 아들 레이(6) 딸 니나(8). 일본 경시청 홈페이지 캡처

 

+ 발생 일시: 20001230일 밤 ~ 1231일 새벽

+ 장소: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카미소시가야 3초메

+ 피해자: 미야자와 미키오(당시 44) 일가족 4

 

피해자들은 평범하고 화목한 가족이었습니다. 새해를 하루 앞둔 20001231일 오전 10시쯤.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에 살던 하루코는 바로 옆집에 사는 딸 야스코(당시 41)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금방 딸이나 손녀 니나(당시 8)가 전화를 받을 시간이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수신음만 반복되었죠. 불안해진 하루코는 직접 야스코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피해자들이 살았던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 3정목(丁目) 23번지 6호 주택. 이 지역은 인근 공원의 확대 사업으로 재개발이 확정돼 범행이 일어난 2000년 12월엔 대부분의 주민이 이사를 간 상태였다.
 피해자들이 살았던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 3정목(丁目) 23번지 6호 주택. 이 지역은 인근 공원의 확대 사업으로 재개발이 확정돼 범행이 일어난 2000년 12월엔 대부분의 주민이 이사를 간 상태였다.
피해자들이 살았던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가미소시가야 3정목(丁目) 23번지 6호 주택. 이 지역은 인근 공원의 확대 사업으로 재개발이 확정돼 범행이 일어난 2000년 12월엔 대부분의 주민이 이사를 간 상태였다.

 

문을 열자마자 밀려오는 피비린내에 하루코는 코를 막았고,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피를 흘린 채 1층 계단에 쓰러져 있는 사위 미야자와 미키오(당시 44)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곧바로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보니 딸 야스코와 손녀 니나, 그리고 손자 레이(당시 6)까지 모두 무참히 살해돼 있었죠.

 

타이코 씨와 니나 씨의 침대가있는 로프트에 이어 사다리와 미키오 씨가 쓰러져 있던 1 층 춤장 (오른쪽 아래)
타이코 씨와 니나 씨의 침대가있는 로프트에 이어 사다리와 미키오 씨가 쓰러져 있던 1 층 춤장 (오른쪽 아래)

 

훗날 일본의 5대 미제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 사건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집 안 내부도와 가택 외부.
집 안 내부도와 가택 외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범행 수법은 너무나 잔인했습니다. 1층 계단에서 발견된 미키오는 전신이 칼로 난도질당해 주변은 피로 흥건했죠. 2층에서 함께 발견된 야스코와 니나에게서도 많은 상처가 발견됐습니다. 특히 야스코는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 수십여 곳이 흉기에 찔렸고, 부검 결과 흉기가 직접 심장을 파고 들어가 출혈성 쇼크로 사망했으며, 아들 레이는 2층 침실에서 목이 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범인은 피해자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펜스를 올라타 2층으로 침입한 것으로 추정
범인은 피해자의 집 바로 옆에 있는 펜스를 올라타 2층으로 침입한 것으로 추정

 

범인이 침입한 것으로 보이는 창이 있는 중2층의 욕실=도쿄도 세타가야구에서
범인이 침입한 것으로 보이는 창이 있는 중2층의 욕실=도쿄도 세타가야구에서

 

범인은 이 집 뒤편의 , 공원의 펜스를 올라타고 2층 욕실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고 추정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건 아니예요.

 

◆ 범인의 기괴한 '10시간' 행적

범인은 1층 서재에 있던, 컴퓨터로 인터넷을 한 흔적도 발견되었는데 이때 컴퓨터 하면서 아이스크림 먹은걸로 추정됩니다.

 

이 사건이 전 세계 범죄 전문가들을 경악게 한 이유는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후 현장에서 보인 비상식적인 여유 때문입니다.

 

1. 냉장고 습격과 식사

범인은 살해 직후 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서 멜론, 보리차, 그리고 4개의 컵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숟가락을 쓰지 않고 용기를 손으로 짜서 먹은 흔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2. 인터넷 서핑과 PC 조작

범인은 피해자의 컴퓨터를 두 차례 사용했습니다.

첫 번째 접속은 오전 1시경으로, 피해자가 소속된 회사의 사이트나 대학 연구소 사이트 등을 방문했습니다.

두 번째 접속은 오전 10시경으로, 극단적인 단체나 공연 티켓 예매 사이트를 확인하려 한 흔적이 남았습니다.

 

3. 현장 유기물과 생리 현상

범인은 화장실을 사용한 뒤 물을 내리지 않았으며, 그 안에서 범인이 먹은 음식물과 배설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범인의 식단과 건강 상태까지 분석되었으나 검거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 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시그니처'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 범인의 복장과 주요 유류품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 범인의 복장과 주요 유류품

 

경찰은 범인이 두고 간 소지품이 너무 많아 금방 잡힐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L사이즈의 나그랑 셔츠

유니클로의 L사이즈 나일론제 검은 에어텍 재킷(주머니 속에서 특정 해변의 모래와 버들잎 낙엽, 꽃가루, 애완용 새똥 등의 흔적이 발견.)

 

+검은 돈피 털장갑(안쪽에 범인의 것인 듯한 A형 혈액형 흔적)

 

+녹색바탕에 빨강, 주황 실선이 들어간 체크무늬 머플러 (130 x 30cm, 제조사를 알 수 없는 염가품)

 

+회색 크로셰(버킷햇) 모자

 

+흉기로 사용된 칼날 길이 21cm 회칼 (후쿠이현 제조품)  범행에 사용된 흉기, 근처 할인점에서 구입된 것으로 추정

 

+무인양품의 검은 손수건 2(45 x 45cm)(프랑스 기라로쉬제 Drakkar Noir 향수를 뿌리고 잘 다려 줄을 잡았음),  칼날에 손이 다치지 않게 감싸는 독특한 매듭법 사용

 

+힙색(오사카부의 한 업체에서 생산) 가방 안에서 미세한 형광 도료와 모래알 발견

 

+족적에서 영국 메이커 슬래진저의 280mm 테니스화(제조국은 대한민국)를 신었다고 판명.

 

◆ 범인에 대한 유력한 가설들

용의자를 찾는 전단지
용의자를 찾는 전단

 

수만 명의 수사관이 투입되었음에도 미제가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추측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1. 외국인 혹은 혼혈설 (DNA 분석)

DNA 분석 결과, 모계는 아시아계지만 부계 쪽에서 남유럽계 혈통이 섞여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 사이즈(275mm)와 흔적들이 일본 내수용이 아닌 한국이나 유럽에서 판매된 모델과 유사하다는 점이 증거로 제시되었습니다.

 

2. 군인 혹은 특수 훈련 경험자

범인이 사용한 칼의 사용법과 손수건 매듭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고, 매우 침착하게 현장을 통제했다는 점, 생리대로 지혈을 했다는 점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3. 원한 관계 vs 무차별 살인

미야자와 씨가 평소 집 근처 공원의 스케이트보더들과 소음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범인의 대담한 행동은 면식범보다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가진 이의 무차별 범죄에 가깝다는 의견도 팽팽합니다.

 

4. 꼬이는 수사범인은 한국인?

대대적인 수사에도 단서조차 찾지 못한 수사 당국에 시민들은 분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시민들의 눈길을 끈 건 '외국인 범인설',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범인이라는 혐한 주장이었죠.

 

280mm(일본 사이즈 27.5) 크기의 영국 브랜드 '슬레진저'
280mm( 일본 사이즈  27.5)  크기의 영국 브랜드  ' 슬레진저 '

 

실제 범인이 한국인으로 지목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신발과 가방 때문이었습니다. 족적으로 파악한 범인의 신발은 280mm(일본 사이즈 27.5) 크기의 영국 브랜드 '슬레진저'였습니다. 이 브랜드가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생산되는 제품인 데다 280mm 사이즈는 일본에서 팔린 적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죠. 범인이 두고 간 가방도 한국에서만 생산된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 신발과 가방 모두 일본에서도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용의자 전단지
용의자를 찾는 전단

 

한국인이 범인이라는 근거 없는 의심은 이내 확신이 됐고, 어떻게든 이에 짜맞추려는 합리화가 지속됐습니다.

 

다른 일본 뉴스에서는 "범인은 젊은 남자인데, 일본의 젊은 남자는 칼 쓰는 법이나 지혈법을 모른다. 한국은 징병제니 대부분 칼 쓰는 법과 응급치료법에 익숙할 것이다."라는 것을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근거라고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일본 경찰이 자기들의 무능함을 한국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던거죠.

당시 징병제를 실시하던 나라는 아시아에 한국 말고 대만도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일본에는 직업적으로 칼 쓰는 법과 응급치료법에 익숙한 사람들이 잔뜩 있을텐데 말이죠.

 

방송에선 "일본형 얼굴이 아니라 한국계에서 보이는 얼굴"이라고 주장
방송에선  "일본형 얼굴이 아니라 한국계에서 보이는 얼굴" 이라고 주장

 

급기야 일본 아사히TV20021228기적의문 TV의 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미국의 '초능력 조사관'이라는 사람까지 불러 용의자의 몽타주를 그리게 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몽타주가 나왔음이 분명했지만, 이 몽타주를 두고 방송에선 "일본형 얼굴이 아니라 한국계에서 보이는 얼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누가봐도 일본인같지 않나요?)

 

한국인 범인설은 2005년 범인의 DNA 감정 결과가 공개되면서 더욱 불이 붙었습니다. 분석 결과 범인의 아버지는 아시아계이고 어머니는 유럽계로 분류됐는데, 부계의 DNA가 일본인보다 한국인에서 발견될 확률이 약 3배 높다는 것이었죠.

이 때문에 수사팀은 용의자 범위를 한국계 혼혈인으로 다시 좁혔고, 한국에 조사원까지 보내 확인에 들어갔지만 허사였습니다. 범인의 지문을 한국인들의 지문과 일일이 대조한 결과, 일치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것이죠.

 

'세타가야 일가 살인사건, 15년째의 새로운 사실'
'세타가야 일가 살인사건, 15년째의 새로운 사실'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의심은 사건 발생 십수 년이 지나서도 이어졌습니다. 2015년 일본 작가 이치하시 후미야는 세타가야 일가족 살인사건, 15년 후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또다시 범인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범행을 사주한 이가 재일교포 부동산 중개인 가네다 히데미치, 한국 이름 김수도. 작가는 가네다 히데미치가 미야자와 가족의 재산을 노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이는 경기도 수원 출신의 조폭 이인은이라는 의혹도 제기했죠.

 

작가의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범인이 신었던 27.5, 28cm 테니스 슈즈 슬레진져는 한국 한정 판매품이었음을 비롯해 힙백이나 모자 등 범인의 유류품은 한국 제품이 많다. 이인은은 서울에 거주하며 자신의 활동권 내에 있는 슈퍼 등지에서 이러한 제품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2. 현장에 남겨진 점퍼 주머니에서 이인은의 본가가 있는 한국 경기도 수원시 주변의 것과 유사한 토사 입자가 검출되었다.

 

3. 미야자와 씨 집에서 발견된 지혈대의 라텍스 고무의 파편과 블레이 테스탄트 부츠의 가죽 조각, 심지어 감정 결과 범인이 현관문 열림 자물쇠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스위스제 육군 나이프는 군대의 장비품으로 판명되었다.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한 경험이 있는 이인은이 소유,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4. 미야자와 씨 집에서 미세한 분말이 검출되었는데 벤제도린이라는 마약으로 밝혀졌다. 이인은 역시 약물 중독자였다는 의혹이 있다.

 

5. 힙백 안에 부착된 특수한 필름 조각과 티탄산바륨의 미세한 분말이 모두 사용되는 곳은 인쇄 가공 공장인데, 이인은 역시 이 사건 전에 인쇄 가공 공장에서 일했던 바 있다.

 

6. 이인은은 범인의 유류품과 같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던 데다 악우들에게 자신을 "키드"라고 하고 다녔으며 범인이 손수건에 뿌렸던 향수인 드러커 누어를 애용했다는 정보가 있다.

 

7. 이인은이 사건 이전인 12월 상순에 연극을 보러 방문한 스기나미구의 연극 스튜디오 주변에서 범인의 지문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했던 다케치 쓰치다 전 형사2019년 미국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치하시의 주장은 "100%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2010년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범인은 살아있는 한 언제든 체포될 수 있습니다.

매년 1231일이 되면 일본 경찰은 사건 현장 앞에서 헌화하고 검거 의지를 다집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알고 있다. 사소한 제보라도 기다린다."

- 일본 경시청 제보 슬로건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