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건사고

일본 도치기 린치 살인 사건 - 살아있는 ATM이 된 19세 청년, 그리고 경찰의 배신

피아 202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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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몽의 시작: "돈을 가져와라"

범인 (좌) '우메자와 아키히로' (중) 주범 '하기와라 카츠히코' (우) '무라카미 히로키'
범인 (좌) '우메자와 아키히로' (중) 주범 '하기와라 카츠히코' (우) '무라카미 히로키'

 

19999, 일본 도치기현.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19세의 청년 스도 마사카즈 씨는 직장 동료였던 하기와라 카츠히코(당시 19)와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하기와라는 폭주족 리더 격인 인물로, 평소 마사카즈 씨가 마음이 약하고 거절을 잘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기와라는 자신의 패거리인 우메자와 아키히로 (19), 무라카미 히로키(19), D(16세)와 함께 마사카즈 씨를 납치하다시피 끌고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놀러 가자"는 식이었지만, 곧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마사카즈 씨를 자신들의 '살아있는 ATM' 취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사카즈 씨를 24시간 감시하며 소비자 금융(대부업체)을 돌게 했고, 대출을 받아오라고 강요했습니다. 심지어 마사카즈 씨의 친구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돈을 빌리게 시켰습니다. 이렇게 뜯어낸 돈은 유흥비와 파친코 비용으로 탕진되었습니다. 약 2개월 동안 갈취한 금액만 무려 700만 엔(약 7,000만 원)이 넘었습니다.

 

2. 지옥 같았던 2개월간의 린치

피해자 스도 마사카즈(출처 : newsjiken.blogspot.com)
피해자 스도 마사카즈(출처 : newsjiken.blogspot.com)

 

돈이 바닥나거나 대출이 거절당하면 끔찍한 폭행이 이어졌습니다. 가해자들은 이를 '린치'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명백한 고문이었습니다.

 

피부를 라이터나 화염방사기를 이용해 불로 지지기

열탕으로 목욕시켜 온몸에 화상을 입히기

● 차가운 물을 끼얹고 방치하기

● 살충제 스프레이에 불을 붙여 화염방사기처럼 쏘기

● 며칠씩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기

 

마사카즈 씨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습니다. 화상과 타박상으로 피부는 문드러졌고,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기저귀를 차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도망치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에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3. 경찰의 배신: "아드님이 돈 들고 튄 거 아니에요?"

이 사건이 일본 열도를 분노케 한 진짜 이유는 바로 경찰의 태도였습니다. 마사카즈 씨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이상한 전화가 계속되자, 부모님은 아들이 범죄에 연루되었음을 직감하고 이시바시 경찰서를 찾았습니다.

부모님은 무려 16번이나 경찰서를 찾아가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차라리 공범에 가까웠습니다.

 

"아드님이 돈을 갚기 싫어서 스스로 도망친 거 아닙니까?"

"이건 돈 문제라 민사 사건입니다. 경찰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마약이라도 하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아드님을 범죄자로 만들 셈입니까?"

 

심지어 가해자 중 한 명의 부모가 경찰관 출신이라는 소문(나중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나 당시 경찰 유착 의혹이 강했음)까지 돌며 수사는 전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범인들의 협박 전화를 녹음해 가져가도 경찰은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4. 결정적인 실수, 그리고 살해

비극의 정점은 1130일에 일어났습니다. 편의점에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마사카즈 씨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부모님은 마침 경찰서에 와 있었고, 수사관에게 급히 전화기를 넘겼습니다.

이때 경찰관이 수화기 너머로 내뱉은 한마디가 마사카즈 씨의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여기는 이시바시 경찰서다. 00(가해자 이름)?"

 

이 말을 들은 가해자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경찰이 우리 이름을 알고 있다. 꼬리가 잡혔다."

 

그들은 자신들의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워, 마사카즈 씨를 입막음하기 위해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경찰의 안일하고 멍청한 대응이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몬 방아쇠가 된 것입니다.

 

이틀 뒤인 122, 가해자들은 마사카즈 씨를 산속으로 끌고 가 목을 졸라 살해하고, 구덩이를 파 시신을 암매장했습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15년만 도망 다니면 공소시효가 끝난다"

며 건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참지 못한 D(16세)가 경찰에 자수를 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5. 밝혀진 진실과 최악의 결말

시체 발견 현장과 피해자(출처 : 가디언즈)
시체 발견 현장과 피해자(출처 : 가디언즈)

 

시신이 발견된 후에도 경찰의 추태는 계속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직접 범인들의 은신처를 알아내 제보했음에도 늑장 대응을 했고,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자신들의 과실을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재판 결과, 주범 하기와라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공범들에게도 징역 13년 등의 중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자수를 한 D(16세)는 정상이 참작되어 소년원에 송치되었습니다.

주범 하기와라는 재판중 고문할때의 마사카즈의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었는데 

"즐거웠다. 사형을 각오하고 있지만 마사카즈의 몫까지 오랫동안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기분이다." 라고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절망하며 죽어갔다"고 질타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판결은 따로 있었습니다. 유족들은 도치기현(경찰)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경찰의 수사 태만과 부적절한 대응이 살해의 원인이 되었다"경찰의 책임을 인정하고 약 1억 엔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경찰의 부작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은 일본 사법 역사상 기념비적인 판결이었습니다.

 

6. 뒷 이야기

스도씨의 아버지 미츠오씨
스도씨의 아버지 미츠오씨

 

마사카즈의 부모가 조사를 요청해서 경찰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데는 아마도 주범인 하기와라의 부친이 당시 토치기현경 경부보(20007월 사직)이었기 때문에 현경내의 불상사를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저널리스트인 쿠로키 아키오는 “마사카즈 우메자와 아키히로가 근무했던 닛산자동차가 사원의 불상사를 은폐하기 위해서

경찰관 출신의 사원(경찰관을 그만 두기 전에는 경찰서장급의 클래스였던 인물)을 통해 토치기현경에 사건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것이 아닌가라는 설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 사건을 통해 경찰관 1명이 담당하는 인구가 지나치게 많은 실태가 폭로되었으며토치기현경의 실태와 소년범죄에 관한 수속의 복잡함 등 경찰의 수사 환경이 문제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피해자 마사카즈 아버지는 아들이 닛산자동차에서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항상 닛산 자동차를 타고 우리 아들이 만든 차다며 자랑하며 다녔지만, 사건 이후로는 도요타 자동차만을 사용한다고 해요.

 

소송이 한창이던 2002911, 스도씨의 어머니 '요코'(당시 50)가 갑작스레 사망했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 요코씨는 사건 이후, 음식을 넘기지 못했고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듬해 가을에는 영양실조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손목이 골절될만큼 쇠약해져 있었어요.

 

"마사카즈를 위해서도 쓰러질 수는 없다"며 의지로 극복하던 요코씨는 824일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우츠노미야시의 사이세이카이 우츠노미야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

 

99일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11일 정오 직후, 남편 미츠오씨(당시 51)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습니다. 이날은 우쓰노미야 지방 법원에서 민사재판 변론이 열리고 있었고 재판이 끝난 직후였어요.

 

 

 


도치기 린치 살인 사건은 단순한 청소년 범죄가 아닙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시민의 손을 뿌리친 경찰이 만들어낸 인재(人災)였습니다. 당시 담당 경찰관들은 징계를 받았지만, 잃어버린 생명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경찰의 민사 불개입 원칙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스토커 규제법 강화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포는 귀신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지켜줘야 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큰 공포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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