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부산, 평화롭던 도시는 유례없는 공포에 휩싸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잇따라 실종되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범인이 시신의 몸에 직접 남긴 사인펜 낙서는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가장 기괴한 기록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1. 사건의 시작: 공포의 여름
사건은 1975년 8월, 부산 전역에서 발생했습니다. 불과 보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세 명의 어린이가 납치 및 살해되었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 7세 김현정 양.

핫도그를 유난히 좋아했던 현정이는 '핫도그를 사 먹으러 간다'며 집 밖을 나섰습니다. 다소 늦은 시간이었지만 핫도그를 파는 구멍가게는 집에서 고작 5분 거리에 있었으며, 평소에도 매일같이 집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핫도그를 사 먹고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8월 20일, 무슨 일인지 한참이 지나도 현정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불안해진 부모님은 현정이를 찾아나섰습니다. 핫도그 가게 주인은 현정이가 핫도그를 사고 바로 집을 향해 뛰어갔으며 이것이 마을 사람들이 목격한 현정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주민들과 파출소 순경까지 나서서 현정이를 찾아봤지만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오전 5시 45분경, 용두산공원 산책로 인근 숲속에서 공원을 순찰하고 있던 공원 관리인이 어린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경찰은 두 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을 했대요. 아이의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했고 죽은 아이의 손발이 움직이지 못하게 속옷을 찢어 만든 끈으로 손발이 결박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복부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적힌 소름 끼치는 낙서였습니다.

"범천동 이정숙이가 대신공원에서 죽었다"
경찰은 걸인으로 보이는 여아가 식중독 내지는 약물중독으로 죽었으며 외상흔적이 없어 타살로 보고 어렵다. 고 보고합니다.
문제는 손발이 묶인 채 목이 졸려 죽은 모습의 아이를 보고 이런 보고를 했다는거죠. 경찰은 보고 후 여자아이에 대한 신원수배를 내렸으며 그날오후 수배된 아이가 실종된 내 딸인 것 같다고 연락이 왔는데 바로 현정이의 가족이었습니다.
현정이 가족의 강력한 요구 끝에 경찰은 이 사건을 유괴살인으로 초점을 맞추고 급히 수사방향을 변경했습니다. 김 양의 시신 발견 당시는 사망한 지 여러 시간이 지난 후였는데 시신 상태로 보아 실종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김 양이 집을 나선 시간과 살해 추정 시간 등을 따져 볼 때 김 양은 핫도그를 사먹고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한 것이 분명하며 그 시간은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죠.
현정이의 이마와 오른쪽 귀 밑에는 심한 타박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 양은 팬티만 착용한 상태였는데 상의와 신발은 발견되지 않았죠. 통상적인 아동 유괴살해사건의 경우 범행 목적은 돈이지만 김 양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수사팀은 범인이 김 양을 살해한 뒤 김 양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금품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범인의 목적은 돈이 아닌 성범죄였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하지만 이런 수사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또 한 건의 엽기적인 아동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맙니다.
◆두 번째 희생자: 6세 배준일 군.

1975년 8월 24일 오후 7시경,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집 앞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던 5살 배준일 군이 갑작스럽게 실종된 것입니다.
당시 배 군의 아버지는 아이가 저녁을 먹은 뒤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출했던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 군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의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오후 7시쯤 집 앞에서 혼자 놀던 배 군에게 20원을 쥐여주며 "맛있는 것 사 먹고 얼른 들어가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생전 배 군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은 밤이 새도록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누구도 7시 이후의 배 군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실종 약 11시간 만인 8월 25일 오전 6시경, 배 군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의 한 어시장 하차장에서 사과 상자를 옮기던 박 모 씨가 상자 더미 사이로 삐져나온 작은 손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박 씨가 사과 상자를 들춰보자, 그 안에는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숨진 배 군이 놓여 있었습니다.
경찰의 조사 결과, 배 군의 사인은 목이 졸려 사망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되었습니다. 범인은 아이가 입고 있던 런닝셔츠를 찢어 손발을 결박하는 잔인함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아이의 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런닝셔츠를 걷어 올리자 아이의 뽀얀 복부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적힌 기괴한 문구가 나타난 것입니다.

"후하하 죽였다"
시신에 직접 남긴 이 짧고도 섬뜩한 낙서는 단순한 범죄를 넘어 범인의 광기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이 시그니처는 대한민국 범죄사에서 가장 엽기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며 당시 부산 전역을 커다란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2. 수사 전개와 특이사항

범인의 엽기적인 행각에 당시 수사팀은 다시 한번 치를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두 사건의 공통점은 매우 뚜렷했는데요. 범행 대상이 모두 10세 미만의 어린아이였다는 점, 흉기를 사용하는 대신 아이의 상의를 찢어 손발을 묶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점, 그리고 범행 시간이 모두 해질녘이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공통점은 살해 후 아이들의 배에 사인펜으로 의문의 낙서를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건에서 발견된 낙서의 필적이 일치한다는 점은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범인은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아동만을 타깃으로 삼은 점 때문에, 당시 수사 주변에서는 범인이 극단적인 아동 혐오론자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수사가 진행되던 8월 23일 밤 11시경, 부산 대교파출소로 한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는 "내가 김 양을 살해했다"며 범행 장소까지 상세히 언급하는 대담함을 보였습니다. 더욱 기이한 일은 20분 뒤에 일어났습니다.
다시 전화를 건 범인은 경찰을 비웃듯 "수사 좀 잘해라. 나를 잡을 수 있겠냐?"라고 조롱하며, "7698이다. 7698, 복창해라!"라고 소리쳤습니다. 경찰이 이 숫자를 복창하자마자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이후 범인의 몽타주가 배포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김 양 사건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8월 18일, 또 다른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사건의 피해자인 이 양은 범인에게 목을 졸리던 중 극적으로 탈출해 살아남았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안전을 위해 병원 측에 아이가 죽은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극심한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양이 발견된 장소는 김 양의 시신에서 발견된 글씨에 언급되었던 '대신공원'이었습니다. 이 양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던 아이에게 접근해 자연스럽게 공원까지 유인했습니다. 범인은 아이와 무려 4시간 동안 함께 머물며 물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갑자기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르라고 시키더니 곧이어 '아버지'라고 부르라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돌연 아이를 결박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 했습니다.
범인은 아이가 죽은 줄 알고 방치한 채 사라졌으나, 아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범인의 인상착의를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는데, 범인이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복창시킨 의문의 숫자 '7698'은 다름 아닌 생존한 이 양의 집 전화번호 뒷자리였습니다. 범인은 이미 피해자의 개인정보까지 완벽히 파악한 채 경찰과 유가족을 농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왜 잡지 못했나? 미제로 남은 이유

당시 부산 경찰은 몽타주 10만 장을 배포하고 100만 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걸며 공개 수사에 나섰습니다.
2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아이를 데려가는 것을 봤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1975년 당시의 허술한 CCTV 체계와 과학 수사의 한계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로 남았습니다. "후하하"라는 비웃음 뒤에 숨어버린 범인은 지금 어디선가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억울하게 떠난 아이들의 슬픔과 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계속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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