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건사고

대한민국의 미집행 사형수 (원언식, 박한상, 성낙주)

피아 2025. 12. 5.
반응형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이 20년 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국제앰네스티에서는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없으면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도 여기에 포함된답니다. 현재는 약 57명의 사형수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분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범죄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촉발합니다.

 

모든 미집행 사형수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어떤 짓을 저질러서 사형수가 되었는지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며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원언식 - 원주 왕국회관 (여호와의 증인) 방화 살인 사건>

원언식

 

당시 35세였던 원언식 씨는 아내의 종교 활동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는데, 이로 인해 원언식 씨는 가정불화에 시달렸다고 해요. 아내가 종교 활동에 몰두하며 가정을 등한시하고, 특히 병든 노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게 되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 결국 그는 끔찍한 방화를 계획하게 됩니다.

 

왕국회관 화재 현장

 

사건 당일, 원언식 씨는 왕국회관에 불을 질렀습니다. 목재 건축물이었던 왕국회관은 불길에 순식간에 휩싸였고, 예배 중이던 신도들은 미처 대피할 새도 없이 화마에 갇혔어요. 화재 발생 10분 만에 경찰과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불길이 워낙 거세어 쉽게 진압되지 않았습니다. 40여 분 만에 간신히 불을 끌 수 있었지만, 이미 많은 생명이 스러진 뒤였습니다.

 

이 비극적인 화재로 총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라 수혈을 거부해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15명에 달했고, 25명이 중화상을 입는 큰 피해를 입었어요.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았다고 하니, 당시의 참혹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참사를 일으킨 원언식 씨는 화재 현장에서 우산동 파출소로 달아난 뒤 스스로 자수했습니다. 이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고, 1, 2, 3심 모두에서 사형 판결을 받으며 그의 죄는 확정되었습니다. 그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며 사형수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원언식 씨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옥중에서 그는 사형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20059월 간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본인조차 사형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암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그러나 놀랍게도 1년간 4차례의 색전술 항암 치료와 200610월의 수술 끝에 암이 완치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는 이 경험을 "두 번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표현했다고 해요. 현재는 광주교도소로 이송되어 복역 중이며,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박한상 -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

사건 발생 전 큰아들 박한상과 부모.
사건  발생 전 큰아들 박한상과 부모.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한상은 당시 20대 중반의 젊은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려한약'의 사장이자 '덕인당 한의원'을 운영하는 등 성공한 사업가였고, 박한상은 이러한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학 생활 중 학업에 전념하기보다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거액의 빚을 지게 되면서 부모님과의 갈등이 깊어졌다고 해요.

 

박한상이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주요 동기는 바로 부모님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학 시절부터 쌓인 도박 빚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던 그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돈을 물려받아 자신의 채무를 해결하고 해외로 도피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한상과 부모님이 살던 서울 삼성동 2층 자택이다. 사건 발생 후 화재로 불타버린 모습.
박한상과 부모님이 살던 서울 삼성동 2층 자택이다. 사건 발생 후 화재로 불타버린 모습.

 

199451일 새벽, 박한상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잠든 부모님을 둔기와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범행 직후 그는 시체를 안방에 옮겨 놓고, 집 안에 미리 준비해둔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습니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침입한 강도의 소행처럼 위장하려 했던 것이죠.

 

사건 이후 박한상의 종아리에서 발견된 교상. 물어 뜯긴 흔적이다. 치열 대조 결과 아버지의 것과 일치했다.
사건 이후 박한상의 종아리에서 발견된 교상. 물어 뜯긴 흔적이다. 치열 대조 결과 아버지의 것과 일치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몇몇 단서들과 박한상의 수상한 행동들은 경찰의 의심을 샀습니다. 당시 집에서 빠져나올 때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거나, 평소 아끼던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는 등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고, 사건 현장에서 부모님의 사망 시점과 화재 발생 시점의 불일치 등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박한상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또한 사건 발생 직후 박한상을 치료했던 간호사가 머리에 피가 보여 상처가 있나 봤는데 없었다. 그리고 종아리에 사람에게 물어 뜯겨 생긴 인교상이 있었는데 치열 대조 결과 아버지의 이빨 자국가 일치했습니다. 결국 그는 덜미가 잡혀 경찰에 체포되었고, 모든 범행을 자백하게 됩니다.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박한상. 이때 그는 몰려든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했다.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박한상. 이때 그는 몰려든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했다.

 

박한상 사건은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재판 과정은 엄청난 사회적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국민들은 패륜 범죄를 저지른 박한상에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재판부는 그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반인륜적이라 판단했습니다.

 

1심과 2심 모두 박한상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대법원 역시 이를 확정하여 그는 현재까지 미집행 사형수로 수감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한상은 상속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유산은 당시 한의대생이었던 그의 남동생에게 돌아갔습니다. 남동생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아버지의 한의원 역시 폐업했다고 합니다.

 

<성낙주 -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 사건>

성낙주

 

1994814, 서울 성북구 월곡동에서 발생한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 사건'은 당시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충격적인 범죄였어요. 이 사건은 너무나 잔혹한 범행 수법 때문에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의 주범은 바로 성낙주였습니다. 그는 황금장 여관을 운영하던 동거녀인 전옥수 씨(당시 49)와 그녀의 중학생 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매우 잔혹하게 훼손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딸이 실종되기 하루 전인 813, 성낙주는 전옥수와 심하게 말다툼을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딸 이향정이 성낙주에게 요즘 엄마랑 자주 싸우는데 그만 괴롭히고 이젠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면박을 당한 성낙주는 크게 분노하며 이향정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음날, 작은방에서 혼자 자고있던 이향정양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했습니다. 그리고 타자기로 이향정이 가출한 것처럼 메모를 작성합니다.

 

엄마 나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그 남자를 따라가기로 했어요. 그 아저씨 참 좋은 분이에요. 엄마도 나를 잊고 아저씨랑 행복하게 사세요.

 

전옥수는 그 메모를 보고 딸이 가출한 것으로 믿고 경찰에 가출신고를 합니다.

 

821일 새벽 3, 성낙주는 여관 안내실에서 전옥수와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재산도 없이 남자 구실도 못하는데 어떻게 당신을 믿고 사냐라는 전옥수의 말에 성낙주는 격분하였습니다.

 

현장검증 하는 성낙주

 

오전 8, 잠을 자던 전옥수의 목을 졸라 살해합니다. 그리고는 수술용칼로 시신을 토막내고 살점을 도려내 정화조에 버렸습니다. 뼈는 라면상자 3개에 나누어 담아 포장을 하고는 의붓형을 속여 암매장했습니다.

 

두 모녀를 살해난 성낙주는 자신이 여관 주인인 마냥 행세를 했습니다. 전옥수의 친구가 옥수 어디 갔느냐?’라고 전화하자 가출한 딸을 위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라고 둘러댔습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친구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면서 성낙주를 연행해 조사를 시작합니다.

 

성낙주는 불리한 진술이 나올때마다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거나 변명과 모르쇠, 거짓말로 일관하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특히 "이 한 글자로 잡았다"는 표현처럼, 사소한 단서 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해요.

 

이향정이 남기고 간 것으로 알려진 쪽지에는 ''''으로 잘못 표기한 글자들이 나왔고 '중학교 3학년인 이향정이 맞춤법을 틀릴 리가 없다'고 판단한 형사들은 성낙주에게 "당일 행적을 자술서에 쓰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을 쓰도록 유도한 결과 ''''으로, ''''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쪽지는 성낙주가 쓴 가짜라는 것이 드러나게됩니다.

 

성낙주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의 압박 수사 끝에 자백했습니다. 그의 죄질이 너무나 나쁘고 잔혹하여, 법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