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건사고

대한민국의 미집행 사형수 (유영철, 이종헌, 전용술)

피아 202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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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이 20년 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국제앰네스티에서는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없으면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도 여기에 포함된답니다. 현재는 약 57명의 사형수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분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범죄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촉발합니다.

모든 미집행 사형수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어떤 짓을 저질러서 사형수가 되었는지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며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유영철 -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사형수 유영철

 

유영철은 20039월부터 20047월까지 서울 일대에서 총 2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그의 범행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 부유층 노인 살해: 20039월부터 11월까지 유영철은 주로 강남구와 종로구 일대의 고급 주택에 침입하여 부유층 노인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는 집주인들을 살해하고 금품을 훔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는데, 이 과정에서 둔기를 사용하며 극도의 잔혹성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들로 인해 노인 단독 가구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이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 출장 마사지사 여성 살해: 20043월부터 7월까지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들을 유인하여 살해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67일에는 26세의 장모 씨를, 617일에는 30세의 김모 씨를, 71일과 3, 9, 13일에도 연이어 출장 마사지사 여성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는 주로 자신의 오피스텔(서울 마포구 신수동과 노고산동 오피스텔 203)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시신을 훼손하여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인근 야산이나 서강대학교 뒷산 등산로에 암매장하는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11명의 여성을 살해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유영철

 

그의 범행은 대단히 치밀하고 대담했습니다. 검거 후 그는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고, 이러한 연쇄 살인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유영철의 범행이 드러날 때마다 국민들은 공포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유영철은 20041213일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고, 현재 미집행 사형수로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의 사건은 범죄 심리학, 수사 기법, 그리고 사형 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사례로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종헌 - 보험설계사 납치 강간 살해사건>

 

이종헌은 보험설계사를 성폭행한 뒤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과정에서 공범마저도 살해하고 암매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범행은 극도의 잔인성과 계획성을 보여주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2005년에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을 확정받았습니다.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사형수로 분류되어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용술 -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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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술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두 차례나 사형을 선고받아 '두 번 죽음을 선고받은 사형수'로 불리며, 그 잔혹성과 파렴치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던 인물입니다.

 

1974, 18세였던 전용술은 여자친구가 변심했다고 생각해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도주하면서 강도행각을 벌이고 여자 종업원을 인질로 잡아 칼로 찌르는 등의 범죄를 저질러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습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근 교수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근 교수

 

이후 그는 고향 선배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근 교수 덕분에 징역 20년으로 감형받았고 19년을 복역한 뒤 1993년에 모범수로 가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출소 후 교수에게 생활비를 타가는 한편, 사업 자금 5,000만원을 내놓으라며 살해 협박을 가해오다가 호프집에서 동창회장과 교수가 술 한잔을 하고 있때 전용술과 친구가 호프집에 들어옵니다. 호프집에서도 이 교수와 전용술 사이에 돈 문제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합니다. 그러다 새벽2시 20분경, 이교수와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과 전용술의 친구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미리 준비한 회칼로 이교수의 옆구리를 두 차례 찔렀고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지인의 눈에는 바닥에 쓰러진 이교수를 회칼로 두 차례 더 찌르는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교수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도피 과정에서 택시기사의 돈을 뺏고 회칼로 찔러 8만원을 빼앗고 달아났습니다.

언론에 이교수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자 자살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포기하고 알고지낸 선배에게 찾아가 3만원을 빌려 창원 올림픽공원 벤치에서 빵과 우유를 먹고 있다가 주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의 급습을 받아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반성은 하지 않고 피해자 탓을 했습니다.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그는 2005년에 다시 한번 사형을 확정받았습니다. 당시 언론은 그를 '맹수보다 위험한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 '어느 사형수의 독백' 출판 시도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전용술 씨가 수감 중에도 자신의 범죄 행각을 담은 글을 쓰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2011, 그는 자신의 살인 경험을 담은 A4용지 221장 분량의 '어느 사형수의 독백'이라는 제목의 글을 출판사에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57세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인 경험을 그냥 두기 아깝다는 듯이 자신의 자전적 소설을 출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교도소 측에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의 발신 금지 조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발송을 거부했어요.

이에 전용술은 "수용자 문예작품 외부발송 불허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에서는 전용술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교도소 측의 발송 금지 처분이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피해자들이 공적인 관심 대상도 아니며, 묘사된 내용이 공공의 관심사와 무관한 사적인 영역이라는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되었죠. 전용술의 출판 시도는 결국 좌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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